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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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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사카 방언은 오사카부를 중심으로 사용되는 일본어 방언으로, 좁은 의미로는 오사카시, 도요나카시 등 셋쓰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을 가리킨다. 음성적 특징으로는 혀나 입술의 긴장 없이 발음하며, 표현적인 특징으로는 존칭 표현과 부정 조동사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에도 시대부터 상업 활동과 관련된 말장난이 발달했으며, 픽션에서는 유머 감각, 구두쇠 등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센바 방언은 오사카 상인의 말투로, 부드럽고 우아한 표현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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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방언
개요
오사카시 [[기타구 (오사카시)|기타구]] [[덴진바시스지 상점가]]에 있는 오사카 방언 간판
오사카시 기타구 덴진바시스지 상점가에 있는 오사카 방언 간판
사용 국가일본
사용 지역오사카부
언어 계통일본어족
일본어
서일본 방언
긴키 방언
언어 코드
ISO 639-1해당 없음
ISO 639-2해당 없음
ISO 639-3해당 없음
Glotto codejapan1280

2. 지역 차이

오사카부의 방언은 셋쓰, 가와치, 이즈미 지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1], 특히 센난 지방의 방언이 가장 특징적이다.[2] 오사카부는 대부분 오사카 평야에 위치하고, 오사카시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방언의 지역 차이가 작은 편이다.[2] 현재는 방언의 지역 차이보다는 세대 차이가 더 커지고 있다.[3]

효고현 남동부도 오사카부와 교통망이 발달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방언 차이가 크지 않다. 우메가키 미노루와 오카다 소노스케는 "현별로 방언 구획을 설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언급했다.[4] 고베시는 옛 셋쓰국에 속하지만, 반슈벤과의 공통점이 있어 차별성을 보인다.

근세 시대 오사카는 교토와 함께 가미가타 문화의 중심지로서 주변 지역에 영향을 주었다. 나고야벤 연구가 아쿠타가와 리츠지에 따르면, 근세 후기 오사카의 말이 교토를 거쳐 오와리 지역까지 전파되었다.[5] 근대 이후에는 킨키 지방의 경제, 문화 (특히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의 중심지로서 오사카벤은 킨키 지방 일원 (경우에 따라서는 시코쿠 등)에 영향력을 강화했고, 만자이희극과 같은 대중 연예를 통해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최근 인바운드 증가로 오사카와 교토에서는 도쿄와 다른 일본어가 사용된다는 것이 해외에서도 인식되고 있다.[6]

교토와 마찬가지로 오사카에서는 방언에 대한 애착이 강하며, 타지에서도 오사카벤을 계속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한편, 표준어화가 진행되면서 오사카벤은 변화를 겪고 있다.

야마모토 슌지는 셋쓰 방언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7] 좁은 의미의 셋쓰 방언이 일반적으로 "오사카벤"으로 불린다.[8]

구분지역특징
셋쓰 방언 (광의)오사카시, 도요나카시, 이케다시, 미노오시, 스이타시
호쿠세쓰 방언노세정 서부[9], 구 도도로미촌, 구 호소카와촌
미시마 방언다카쓰키시, 이바라키시
요도가와 연안 방언미시마군 (시마모토정, 미시마정), 구 토리카이촌, 구 미카마키촌교토 방언의 영향
노세 방언도요노군 (도요노정, 노세정)우타가키촌은 교토 방언, 덴노는 탄바 방언의 영향



위의 구분은 1962년 기준이며, 이후 방언의 지역 차이는 줄어들고 있다. 2009년, 기시에 신스케는 셋쓰, 가와치, 센보쿠 지역의 언어 유사성이 높다고 지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카기 지에는 현대(21세기 초) 오사카부에는 "오사카벤"(셋쓰·가와치·센보쿠)과 "센슈벤"(센난)의 두 가지 방언이 존재한다고 보았다.[10]

효고현 한신 지역의 방언에 대해 야마모토 슌지는 아마가사키시, 니시노미야시, 가와니시시, 이타미시, 다카라즈카시는 오사카 방언에, 아시야시는 고베 방언에 속한다고 했다.[11] 가마다 료지는 1958년 조사에서 스미요시강을 경계로 존칭 표현 "하루"와 "테(야)"의 우세가 바뀌는 것을 밝혀냈다.[12] (이후 "하루" 우세 지역은 서쪽으로 확대). 산다시도 "테(야)"가 우세한 지역이다 (2010년대 고령층 조사).[13]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오사카시 내에서도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다양한 말이 존재했다. 센바 (상인), 시마노우치 (예능인), 텐마 (관리), 덴노지 (농민) 등 다양했다. 메이지 후기 이후 오사카 시전 노선망 확충 등으로 시내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시내의 말은 균질화, 간략화되었다.[14]

2. 1. 한신 방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세설』에 등장하는 코이(こい)의 모델인 시마가와 노부코의 증언에 따르면, 전전(戰前)의 한신(阪神) 지역에는 "한신 말" 또는 "아시야 말"이라고 불리는 말이 존재했다고 한다.[15]

센바(船場)나 시마노우치(島之内)의 부유한 상인들이 롯코(六甲) 동남쪽 기슭에 거주지를 짓기 시작했을 때, 한신 지역에는 본격적인 센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도쿄에서 화이트칼라가 전근을 오거나, 지방 출신으로 제국대학 출신의 데릴사위를 맞는 집안이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가미가타(上方) 말의 부드러움을 유지하면서 표준어 표현을 받아들인 "한신 말"이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그것이 나중에 오사카 시내로 흘러 들어가 현재의 간사이 공통어의 모태가 되었다고 추측된다.[15]

여성 측에서 생겨난 구어체였기 때문에 "여성"의 세계를 그리는 산문 예술에 적합했다. 슈쿠가와・코로쿠엔을 무대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만(卍)』이 개척한 "말하기" 문학의 계보는, 이노우에 야스시의 『사냥총』이나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와 같은, 한가한 마담의 서간체 소설로 계승되게 된다. 한신 말이야말로 "간사이 사투리의 근대화"를 담당한 시민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15]

3. 음성

혀나 입술 등을 너무 긴장시키지 않고 발음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고령층에서는 자음 발음이 불분명해지기 쉬운데, 사행음의 하행음화(예: すみません→すんまへん, 七→ひち), 자·다·라행의 혼동(예: 요도가와의 물→요로가-노 미루, 좌석→다시키. 단, 기슈벤 정도는 아님), 반모음 탈락(예: 헤엄치다→오-구, 변하다→카-루) 등이 일어난다.[1] 남자의 거친 말투에서는 라행음이 설전음이 되기 쉽다. 고령층에서는 어중의 가행 비음이 들리지만, 중년층 이하에서는 쇠퇴하고 있다.

자음과 대조적으로 모음은 명료하게 발음되며, 무성음화가 적다. 예를 들어 "그렇습니다"는 "소-데스-"처럼 어미가 늘어진다. 연모음의 변질은 에이→에-를 제외하고는 일어나지 않지만, "보였다→메-타", "사라지다→케-루"와 같은 이에→에-나, "파리→하이", "마중 나가다→무카이니 이쿠"와 같은 아에→아이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1박의 일상어는 "모기→카-", "눈→메-"처럼 장음화되지만, "바쁘네→이소 가시나-", "관동 조림→칸토다키(=오뎅)"처럼 원래 장음인 것이 단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우는 원순 후설 고모음에 가깝게 발음된다.

그 외, 이·우 단에 아·야행음이 이어질 때의 "일요일→닛초", "좋아→슷키야넨"과 같은 촉음+요음화, 그 외 "세탁기→센탓키", "어제→킨노-", "소변→숀벤", "쓰레기통→곤바코"와 같은 어중·어미의 비음화, "무슨 짓을 하는거야→난 스-네", "전철을 타다→덴샤응 노루"와 같은 동사의 라행음이나 조사 "에"의 비음화(다·나행음이 이어지는 경우) 등이 특징적이다.

억양은 쿄-한식 억양이며, 오사카 시내뿐만 아니라 오사카부 전역에서도 지역차가 거의 없지만, 세대 간의 차이는 꽤 크다.[16]

4. 표현


  • 존칭 표현에는 "데스(입니다)"와 "마스(합니다)"를 사용하지만, 연배가 있는 층에서는 "다스", "데오마스", "오마스"를 사용한다.[1] "오마스"는 단독으로 "있다"의 존칭으로도 쓰인다. 존칭 표현 뒤에 종조사가 접속하면 "스"가 촉음화·발음화되는 것도 전통적인 오사카벤의 특징이다. "다스", "마스", "오마스"는 "스"가 생략되기도 한다.[1]
  • * 예: 여기가 오사카 성입니다, 여기가 오사카 성다스, 여기가 오사카 성다, 여기가 오사카 성데오마스, 여기가 오사카 성데오마
  • * 예: 갑니다→가마, 갑니다네→가만네, 갑니다가나→가만가나, 갑니다아→가만나아, 갑니다에→가맛세, 갑니까→가맛카, 갑니다야로→가맛샤로
  • 5단 활용 동사에 부정 조동사 "헨"을 접속하는 경우, 주로 "아단 + 헨"과 "에단 + 헨"의 두 가지 형태가 있지만, 오사카벤에서는 "'''에단 + 헨'''"이 우세하다. (나고야 방언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아단 + 헨"이 우세한 지역(교토나 고베 등)에서는 불가능을 나타낼 때 가능 동사의 "에단 + 헨"을 사용하지만, 오사카벤에서는 일반적인 "에단 + 헨"과의 동음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가능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미연형 + 레헨'''"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교토에서도 "미연형 + 레헨"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다만 "응"의 경우에는, "에단 + 응"을 일반적인 부정에 사용하지 않고, 교토 등과 마찬가지로 불가능 표현이 된다.
  • * 예: 이케헨 - 오사카에서는 "가지 않는다", 교토에서는 "갈 수 없다"의 뜻. "이켄"은 오사카에서도 교토에서도 "갈 수 없다"의 뜻.
  • * 예: 이카레헨 - 오사카에서 "갈 수 없다"의 뜻. 교토에서는 "이케헨"이지만, 최근에는 교토에서도 "이카레헨"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 * 예: 무릎은 와라에헨야로 - 오사카에서는 "무릎은 웃지 않겠지", 교토에서는 "무릎은 웃을 수 없겠지"의 뜻.
  • * 예: 난데 켓쇼니 노코레헨넨 - 오사카에서는 "왜 결승에 남지 않니", 교토에서는 "왜 결승에 남을 수 없니"의 뜻[18]
  • 아단 활용 동사에 부정 조동사 "헨"을 접속하는 경우에는 "에단 + 헨"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상1단 활용 동사에 접속하는 경우에는 개인이나 세대에 따라 여러 형태가 있으며, 예를 들어 "보다"의 부정형에는 "메-헨", "미에헨", "미-헨"이 있으며, 젊은 층에서는 "미-힝"이라는 형태도 많다. 카행 변격 활용 동사와 사행 변격 활용 동사의 경우에는 "케-헨"과 "세-헨"이 우세하며, 일부에서는 "코에헨"이나 "시에헨"도 있지만, 젊은 층에서는 "키-힝", "코-헨"이나 "시-힝"이 널리 퍼져 있다. 21세기에 들어, 1단 활용·카행 변격 활용·사행 변격 활용에서는 "미얀", "코얀", "시얀"과 같은 "얀"을 사용하는 부정형도 와카야마·나라 방면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
  • "'''모우카리맛카'''"
  • * "수고하십니까"가 변한 말이다. 돈에 꼼꼼한 오사카 사람다운 표현으로 알려져, 오사카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우카리맛카"를 사용하는 오사카 상인은 거의 없으며, "어떻게(도나이) 됐습니까", "깎아주시겠습니까", "바쁘신가요" 등이 일반적인 상인의 인사였다고 한다. "모우카리맛카"의 상대어로 알려진 "'''보치보치덴나'''"("보치보치데스나"가 변한 말)는 현재도 다용되는 표현이지만[19], "모우카리맛카"→"보치보치덴나"라는 인사의 조합은 키쿠타 카즈오의 소설 내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최근의 오사카에서 이 주고받음이 모방되는 것은 관동에서 본 오사카벤의 이미지를 역수입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오사카시 나니와구 출신의 방송 작가인 아라타 신고는 "'한교'라는 말은, 평론가 오야 소이치의 조어이지만, 내 추론으로는, 그 흐름을 잇는 주간 저널리즘이, 쇼와 20년대 후반에 '오사카 사람은 마주치면 '모우카리맛카'라고 인사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고 있다.[20]

5. 센바 방언

'''센바 말'''(船場言葉 센바코토바[*]일본어)은 근세부터 근대에 걸쳐 상업 도시 오사카의 중심지로서 번영했던 센바의 상가에서 사용된 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센바 개발이 시작된 이후, 에도 시대를 거쳐 메이지부터 쇼와 중기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고 격식 있는 오사카 상인의 말로 여겨졌다.[21] 점잖고 격식 있는 오사카 사투리의 대표격으로 인식되었다. 오사카 사투리 연구가 마에다 이사무는 "오사카 사투리는 서민적인 언어라는 것이 통설이지만, 적어도 센바 말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센바 말은, 말하자면 귀족적일 뿐 그 외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평했다.[22]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센바를 개발했을 당시에는 사카이에서 강제 이주된 상인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이후 히라노 상인이나 후시미 상인 등이 대두했고, 에도 시대 중기에는 오미 상인이 센바로 진출했다. 이러한 경위로 센바 말은 각지의 상인들의 말이 섞여서 성립되었다. 장사라는 직업상, 정중하고 품위 있는 말투가 요구되었기 때문에, 교토 사투리 (특히 고쇼 말)의 표현을 많이 도입하여, 독자적인 부드러운 어감과 표현이 발달했다. 센바 말이라고 해도, 대화 상대나 상황, 업종, 직책 등에 따라 말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메이지 이후, 사회 정세의 변화와 중등·고등 교육의 보급에 따른 표준어화(센바 말의 사용층은 부유한 가정이 많고, 교육열이 높았다)에 의해 센바 말은 서서히 변화해 갔다. 다이쇼 이후, 오사카에서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타 현에서 많은 유입이 있었지만, 이주자는 난해한 센바 말에 쉽게 익숙해질 수 없었고, 니시요코보리가와 이서의 시모센바 (특히 아와자나 우츠보)의 상인이 사용하는 단도직입적이고 스피디한 상업적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 도시의 확대와 함께 그러한 말이 세력을 넓히고, 군부의 소박한 말도 섞이는 가운데, 센바 말은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전후부터 교외 전철이 발달하면서 전철 회사는 연선 개발을 추진하는 동시에 교외 생활의 쾌적성을 선전했다. 처음에는 졸부나 주식 졸부들이 하마데라나 미카게에 별장을 짓고, 그 후에도 붐이 이어져, 센바 상인은 앞다투어 교외에 별장을 갖게 되었다 (한신간 모더니즘 참조). 햇빛이 들지 않고 주거 공간이 상업 공간에 압박되는 센바의 마치야는 교외 주택보다 거주성이 낮았고, 결국 교외의 별장을 본가로 하는 상인이 늘어나, 그것과 함께 센바 말도 교외로 밀려나 더욱 변화하게 되었다.

오사카 대공습이나 전후 혼란에 의한 구 거주민의 이산, 고도 경제 성장에 의한 상업 관행의 변화, 기업의 도쿄 이전 등이 원인이 되어 센바 말은 급속히 쇠퇴했고, 지금은 가미가타 라쿠고의 고전 라쿠고 등에서 들을 수 있는 것 외에는, 단카이 세대 이전 세대에 태어난 세대의 일부 주민에게만 센바 말이 남아 있다. 센바 말을 지키고 전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며, 예를 들어 1983년에 결성된 "나니와 말 모임"에서는 2000년대 시점에서 약 2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었다.[28]

5. 1. 센바 방언의 특징

일반적으로 오사카 방언은 다른 방언보다 빠르게 말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센바 말은 가와치 방언 등과 비교하여 같은 내용의 대화라도 단어 수가 많아, 말하는 속도가 느리고 차분하며 정중한 인상을 준다. 자음이나 접두사 등을 생략하지 않고, 듣는 사람에게 알기 쉽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교토 말과 유사하여 청자가 무의식적으로라도 이를 인지하면 교토 말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인상이 더해진다. 또한, 아름답다는 인상은 무성음의 다용에 의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된다.[28]

5. 2. 센바 방언의 예시

船場言葉일본어에서 사용된 경칭, 인칭 대명사, 가족 호칭은 다음과 같다.[42]

센바 말의 경칭, 인칭 대명사, 가족 호칭
종류표현설명
경칭단사(だんさ)당주, 주인. 단나사마(旦那様)가 변형된 말.
오야단산(おやだんさん)당주의 아버지. 당주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퇴한 사람도 있고, 여전히 사업에 관여하는 사람도 있음.
고룐산(ごりょんさん)고룐닌사마(御寮人様). 당주의 아내. 단순한 주부가 아니라, 가게와 가족을 모두 아우르는 총지배인 역할을 했음.
오에사(おえさん)오이에사마(御家様). 원래 고룐산이었던 사람이 아들이 당주가 되면서 격상된 호칭.
오코힛사(おこひっつぁん)고코시츠사마(御後室様)에서 유래. 배우자가 죽은 사람을 부르는 말.
본(ぼん)본남자아이 일반을 부르는 말. 가정 내에서는 고용인들이, 가정 외에서는 다른 집 아들을 부를 때 사용.
이토(いと)산여자아이 일반을 부르는 말. 이토시이(いとしい) 또는 이토케나이(いとけない)에서 유래.
인칭 대명사보쿠(저)자신을 학교에서 지칭하는 말.
와테(나)자신을 집에서 지칭하는 말.
안타남편 또는 하위자에게 사용.
아나타바깥 관계의 인물에게 사용.
안상맞선 자리 등에서 사용하는 존칭.
가족 호칭코도모시(こどもし)・코도못산(こどもっさん)다른 집 아이들에게 사용.
오나고시(おなごし)・오나곳산(おなごっさん)여종.
오토코시(おとこし)・오토콧산(おとこっさん)하인.
오바(おん바)・오바한(おん바はん)유모.
네에산(ネエサン) 또는 네에챤(ネエチャン)자매끼리 부를 때, 위를 부르는 호칭



다음은 센바 말을 사용한 대화 예시이다.[42]


  • 다은 씨(A)와 부인(B)의 대화

  • * B: 여보.
  • * A: 무슨 일인가?
  • * B: 며칠 전부터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여자아이인 오타케의 부모가 찾아와서 아주 좋은 혼담이 있다고 합니다.
  • * A: 그래?
  • * B: 그래서, 이번 달까지만 휴가를 받아서 나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 A: 그거 참 좋은 일이 아니겠소? 그래, 오타케도 벌써 스물한 살. 나이도 나이인지라.

  • 부인(A)과 아가씨(B)

  • * A: 코이 씨. 지난번 준케이마치의 고모가 가져오신 사진 속 그 사람, 어떻게 생각하세요?
  • * B: 아무 생각 안 들어요. 저는 그런 구마소의 자손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무서워요.
  • * A: 이상한 애로구나. 그런 얼굴이야말로, 정말 남자다운 얼굴이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 그런 분들은, 보기에는 무서워 보여도, 속은 상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중략)
  • * B: 그럼, 엄마가 시집가면 좋겠네요.

6. 말장난

오사카는 상업 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에 다양한 말장난이 발달했다.[39] 의뢰, 교섭, 사절, 빈정거림 등을 말장난을 통해 부드럽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39]

이러한 말장난은 에도 시대, 특히 겐로쿠 시대 이후 문화가 번성했던 시기에 극장가와 유곽에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43] 벼락치기 장수나 하인 등이 사용하던 말들이 세상에 유행하게 되었다.[43] 가세이 시대(문화, 분세이 시대)는 에로, 그로테스크, 난센스가 유행했던 시기였는데,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말장난은 사람들의 생활 속 유머로 자리 잡았다.[43]

말장난 단어들은 한 장짜리 출판물로 만들어져 널리 퍼졌으며, 사람들의 일상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43]

다음은 오사카 말장난의 예시이다.

말장난의미해설
흰 개 엉덩이재미있다꼬리도 희다
검은 개 엉덩이재미없다꼬리도 희지 않다
소 엉덩이박식함モウ|모우일본어의 엉덩이
우동집 가마말뿐끓는 물뿐
변소의 불되는 대로잿더미가 됨
다섯 홉 병평생 재미없다한 되가 안 됨
개미가 열 마리, 원숭이가 다섯 마리감사합니다개미 10, 원숭이 5
새벽의 등불흐릿함
과부의 목욕마음대로 하세요마음대로 물을 끓여요
妹|이모토일본어의 시집가격 상담姉|네에일본어와 상담
문어 튀김발목을 잡다
죽물 장수의 불퐁퐁 말하다
식초집 간판능숙함상초
정어리 조린 냄비(남녀가) 냄새나는 사이이다/아무래도 냄새난다
닳은 톱(사이가) 끊을 수 없다
봄 저녁놀구두쇠줄 것 같지만 안 줌
아기의 목욕돈을 달라고 울고 있다돈 대야에서 울고 있다
여우의 뜸곤궁하다곤궁하다
말의 뜸빈궁하다빈곤하다
무지 옷한 푼도 없음문신 없음


7. 역할어로서의 오사카벤

만화나 드라마 등 픽션의 세계에서 오사카벤 및 간사이벤은 일정한 스테레오 타입을 수반하는 역할어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역할어"의 제창자인 카네미즈 사토시는 오사카 사투리를 쓰는 등장인물이 있다면 거의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스테레오 타입 중 하나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44] 또한, 스테레오 타입적인 역할어는 표현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편견·차별 의식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45]

# 유머 감각이 있고, 웃기는 것을 좋아하고, 수다스러운

# 구두쇠, 수전노, 배금주의자

# 미식가, 식도락가

# 화려한 것을 좋아함

# 호색, 저속

# 끈기 (역경에 강하고, 에너제틱하게 그것을 극복해 나간다.)

#* 덧붙여, 오사카에서는 원래 "끈기"는 나쁜 근성을 의미하는 단어였다.[46] 원래 오사카 사투리에서 현재의 "끈기"의 뉘앙스와 가까운 단어는 "투지"이다.[47]

# 야쿠자, 폭력단, 무서움

2부터 6은 모두, 직관적·현실적인 쾌락이나 욕망을 거리낌없이 긍정하고 추구하려는 성질과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주변의 상식인으로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조소나 경멸의 대상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1과 결부되어 사랑스러운 익살꾼이 되고, 또한 위선·권위·이상·규범과 같은 속박을 비웃어 넘기는 역할도 한다. 즉, 스테레오 타입적인 오사카인·간사이인은 트릭스터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고 카네미즈는 지적한다.[48]

1부터 6의 스테레오 타입은, 에도 시대 후기에는 이미 상당 부분 완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에도 시대, 가미가타에서는 현실적이고 경제성을 중시하는 기풍이 있었고, 또한 상업 교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수다스러움이 환영받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금욕주의·이상주의·행동주의적이고 과묵한 인격이 선호되는 에도와는 대조적이었다. 특히 상업 도시 오사카에서 에도로 돈을 벌러 오는 가미가타 상인들의 모습은 "그날 번 돈은 그날 다 쓴다"는 에도 사람들에게 강하게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가미가타의 인형 죠루리의 예능도 스테레오 타입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49] 짓펜샤 잇쿠의 『도카이도 주히자쿠리게』에 등장하는 키타하치의 "전체적으로 가미가타 사람들은 얄미워. 기가 막힌 녀석들이다."[50]라는 대사는 당시 에도에서 본 가미가타 사람의 이미지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 오사카에서는 엔타츠·아차코를 중심으로 만자이가 급속히 발전하여, 라디오를 통해 일본 전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또한, 전후의 텔레비전에서도 『반도는 한토와 뎃치돈』이나 『테나몬야 산도가사』와 같은 가미가타 코미디 프로그램이 성행했다. 이러한 매스 미디어에서의 발신은 오사카 사투리·간사이 사투리의 침투를 일본 전국에 촉진함과 동시에, "간사이인 = 웃김"이 고정화되어 갔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키쿠타 카즈오의 희곡 『가메츠이 야츠』[51]나 하나토 쿄의 "근성물"이 붐을 일으켜, "간사이인 = 구두쇠·근성"이 고정화되어 갔다고 생각된다.[52] 나카이 세이이치는 "오사카 사투리는 재밌고, 오사카는 웃음이다. 이 이미지는, 80년대의 만자이 붐이 불을 지피고, 90년대에 들어 일반에 보급되어 갔다. 이것은 관점을 바꾸면, 90년 이후, 버블이 붕괴되어 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오사카의 쇠퇴가 결정적이 된 것과 동일 선상에서 이야기되는 현상으로, 성공자가 격감한 오사카는 '근성'에서 '바보'의 도시로 전국 사람들의 이미지를 변용시켰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53]

마지막 7은 전후에 형성된, 비교적 새로운 스테레오 타입이다. 에도 시대·메이지 시대에 있어서, 베란메 말투로 싸움을 좋아하는 에도 사람에 비해서, 가미가타 사람은 마음이 너그럽고 유약하다고 여겨졌다.[54] 이즈미 쿄카가 "풀표지에 나타난 에도의 여자의 성격"에서 마찬가지로 평가하고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원래 오사카의 상인들은 매우 겁이 많다. 에도에서 싸움이 나면 구경꾼이 나와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오사카에서는 구경꾼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라고 후쿠오우 자전에서 말하고 있다.

"간사이인 = 폭력적"인 이미지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이마히가시 코우의 "카와치물", 『극도 시리즈』에 대표되는 간사이가 무대인 야쿠자 영화, 『아!! 꽃의 응원단』이나 『자리응코 치에』와 같은 에너제틱한 만화 작품의 유행 등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생각된다. 그 후, 1980년대에는 영화와 같은 항쟁 사건이나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등의 흉악 범죄가 간사이에서 다발하여, 신문이나 와이드 쇼를 연일 떠들썩하게 하는 가운데 "간사이 = 무서움"의 이미지가 부추겨졌다.[55]

이러한 인상 주입을 키즈카와 케이는 "매스컴에서는, 평소, 오사카의 일은 전국 기사가 되기 어려운데, 폭력단의 항쟁이나 경찰 비위 등이라고 하면 곧 크게 취급한다. 이래서는 오사카의 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이미지의 독자적인 진행이 '문화 테러'로 이어진다."라고 지적하고 있다.[56] 또한, 간사이 대학 부학장인 쿠로다 이사무도 스포츠 신문에서 차츰 일반화되었다고, 역할어로서의 간사이 사투리의 확산을 지적한다.[57] 오사카를 다루는 재경 매스컴의 자세가 애초부터, "어디까지나 관동 사람에게 있어서의 스테레오 타입의 오사카"만을 요구하려고 한다는 지적도 있다.[58]

8. 예문


  • 다은 씨(A)와 부인(B)의 대화[42]
  • * B: 저, 여보.
  • * A: 무슨 일인가요?
  • * B: 요 며칠 전부터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여자아이인 오타케의 부모가 찾아와서 아주 좋은 혼담이 있다고 합니다.
  • * A: 그래요?
  • * B: 그래서, 이번 달까지만 휴가를 받아서 나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 A: 그거 참 좋은 일이 아니겠소? 그래, 오타케도 벌써 스물한 살. 나이도 나이인지라.

  • 부인들끼리의 대화 (A,B)[42]
  • * A: 오우치 씨, 모두 건강하신가요?
  • * B: 네, 정말 감사합니다. 작년 말에 제가 감기에 걸려 이틀, 사흘 정도 쉬었습니다만,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 * A: 그거 정말 다행이군요. 저희 집에서는 은퇴하신 분이 신경통으로 누워 계시고, 배우자의 지병인 천식이 또다시 재발해서, 그런 와중에 아이가 2층 계단에서 떨어져서 다치고 뼈가 부러지고 해서,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 * B: 네, 그거 참 큰일이셨네요, 전혀 몰랐습니다. 너무 둔했습니다. 전화라도 주셨으면 여자아이라도 도와드리러 갔을 텐데요.
  • * A: 무슨 말씀을, 여보. 너무 나쁜 일들이 겹쳐서, 이것도 평소의 신심이 부족해서 그런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깨달은 정신병으로, 앞으로 덴마의 덴진 씨에게 참배해서 사과하고 오려고 합니다.
  • * B: 그거 참, 너무 지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 부인(A)과 아가씨(B)[42]
  • * A: 코이 씨. 당신, 지난번 준케이마치의 고모가 가져오신 사진 속 그 사람, 어떻게 생각하세요?
  • * B: 아무 생각 안 들어요. 저는 그런 구마소의 자손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무서워요.
  • * A: 이상한 애로구나, 당신 말하는 것 보면. 그런 얼굴이야말로, 정말 남자다운 얼굴이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분들은, 보기에는 무서워 보여도, 속은 상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중략)
  • * B: 그럼, 엄마가 시집가면 좋겠네요.

  • 출입하는 번두(A)와 아가씨(B)[42]
  • * A: 이런 무늬는 어떠신가요? 무늬도 그렇고 색감도 그렇고, 최신 유행입니다.
  • * B: 네, 유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 무늬 싫어요. 어디를 가도 누구나 입고 다니잖아요.
  • * A: 그게 유행이라서요…… 그렇습니까. 그럼, 이건 어떠신가요? 고대 자색 바탕에 국화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보께서는, 어떤 색을 좋아하시고, 보라색은 잘 어울리지 않으시죠.
  • * B: 그렇네요, 하지만, 뭔가요. 좀 더 산뜻한 게 아니면…… 요즘은 이렇게 낡은, 궁녀들이 입는 무늬는 아무도 입지 않아요.
  • * A: 곤란하군요. 누구나 입는다면 싫고, 아무도 입지 않는다면 또 싫고. 그럼 도대체 어떤 무늬가 좋으신가요?
  • * B: 오랫동안 출입하면서, 그런 것도 모르세요? 역시 저희 집 젊은 번두 씨가 아니면 안 되네요.

  • 설정한 문장을 긴키 각지의 방언으로 번역하여 정리한 『긴키 방언의 종합적 연구』의 「긴키 방언 문례 초」에서 구 셋쓰국의 범위에 해당하는 방언을 발췌한다[59]

셋쓰노세미시마고베
비가 오니까 우산을 쓰고 가세요.아메(가) 훗테(이)루 욧테(니) / 사카이니, 카사(오) 사시테 이키 / 이키(나하레) 야 / 나아메 훗토루 사카이, 카사 사시테 이키 / 이키나하레 요아메(가) 훗타루 / 훗테루 사카이니, 카사 사시테 / 사히테 이키 야아메 후리요루 사카이, 카사 사시테 이키요
안녕하세요. 자, 올라오세요. 여러분이 기다리고 계시니까요.오하요산데스 / 오하요산. 사 아갓토크(레)나하레 / 오안간나하테. 미나상가 / 도나타한모 맛테하리마세 / 맛테하리마스욧테오하요오스 / 오하요고자이마스. 사 아갓토크나하레 / 아갓테크나하레. 미나한 / 민나 맛타하리마세 / 맛타하리맛사카이오하요산데스 / 오하요고자이마스. 사 아갓토크나하레 / 아갓토크나레. 미(응)나 / 미나한 맛테테쿠레타하리마스넹 / 맛타리마오하요산데스. 마 아갓토쿤나하레. 미나상가 맛톳테뎃사카이
아기를 재워야 하니까 조용히 해야 해요.야야코 / 아칸보 네야세루욧테 / 네사센난사카이, 시즈카니 / 오토나시- 센토 / 시테오칸토 아칸데(ー)야야코 / 아카짱 네사스넨사카이 / 네야스노야사카이, 시즈카니 시테나 / 시토라나 아칸데ー / 이칸데야-코오 네야스사카이 / 네사세루사카이, 시즈카니 / 오토나시- 시테(야)나 이칸데 / 아칸데아칸보 네사센네야카라, 시즈카니 시토라나 아칸데ー


  • 1990년에 기록된, 메이지 44년(1911년)생의 오사카시 이쿠노구의 여성(센바 미나미큐호지마치)과 조사자(기시 노부유키)의 대화[60]
  • :(오와타리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 : 오와타리는 말이죠.
  • : 그곳의 수호신이요.
  • : 뭐,
  • : 우리들, 저 난바 신사라고 해서 말이죠, 지금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만, 미도스지에 난바 신사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만, 그 축제의 날이,
  • : 스무날, 스무하루날과 스무하루하루 날이 있잖아요.
  • : 7월 그 요미야 날에,
  • : 그 본 축제 날이랄까 아니면 그것을 말이죠,
  • : 마을에서 모두 말이죠,
  • : 어린아이도 내보내고요. 그리고 집의 어른들이,
  • : 역할, 돌보고 계시는 분이라던가 차례대로 또 나오시는 집도 있고, 제대로 의미를 새겨서 그게 문장 달린 옷까지 말이죠,
  • : 그걸 따라 가시죠. 그래서 그 신이,
  • : 가마에 타고 그리고,
  • : 뭐라고 하더라. 저쪽의 오타비소라는 곳이 있어서, 거기에 가시는 거예요. 그 행렬을요.
  • : 그 신사에서부터 쭉,
  • : 행렬을 지어 가시는데, 그리고 마을에 들리면 어린아이를 내는 곳도 있고, 그런 일로 또 열심히 열심히 본 거예요. 넉넉한 거라서요.
  • :(그런 게 지금은 전혀 없어졌네요.)
  • : 없어요. 없어요. 이제 전혀,
  • : 그랬었죠. 뭐, 각각의 말이죠,
  • : 신사의,
  • : 그 오와타리는 있어요. 각각 말이죠.
  • : 있는 곳도 없는 곳도 있었어요.
  • :(역시 센바)
  • : 뭐 역시 우리들은 그런 일 역시 그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 : 이제 아마 제가 마지막일 거예요.

참조

[1] 서적 楳垣編 1962
[2] 서적 橋爪監修 2009
[3] 서적 平山ほか編 1997
[4] 서적 岡田・楳垣 1962
[5] 인용
[6] 웹사이트 第一次到大阪旅遊時感到驚訝的5件事 https://tw.news.yaho[...] 2024-08-22
[7] 서적 山本 1962
[8] 서적 高木 2018
[9] 인용
[10] 서적 高木 2018
[11] 서적 楳垣・岡田 1962
[12] 서적 兵庫県方言文法の研究 桜楓社 1979
[13] 서적 都染 2018
[14] 서적 前田 1977
[15] 간행물 阪神文化のパイオニアたち 淡交社 1997
[16] 서적 平山ほか編 1997
[17] 간행물 私の見た大阪及び大阪人 1932-02-01
[18] 블로그 宮本慎也の2006年12月のブログより 2023-10
[19] 서적 札埜 2006
[20] 인용
[21] 서적 香村 1976
[22] 서적 前田 1977
[23] 서적 大阪弁 朝日新聞社 1977
[24] 서적 船場言葉 近畿方言学会 1955
[25] 잡지 新生 1947-01
[26] 서적 香村 1976
[27] 서적 香村 1976
[28] 웹사이트 歴史都心船場のことばを守り伝える活動をする『伝統を守る なにわの会』 http://web.kyoto-ine[...] 2009-04-09
[29] 서적 香村 1976
[30] 서적 大阪ことばの特徴 和泉書院 1993
[31] 학술지 文学作品にみられる船場言葉と河内弁:谷崎純一郎「細雪」今東光「悪名」より https://f.osaka-kyoi[...] 2016
[32] 서적 香村 1976
[33] 서적 香村 1976
[34] 서적 船場大阪を語りつぐ 和泉書院 2016
[35] 잡지 大阪ことばを語りつぐ ―大阪は知の都。出会った恩人たちのこと 木村元三さん―
[36] 서적 香村
[37] 서적 香村
[38] 서적 大阪ことば辞典 東京堂出版
[39] 서적 前田
[40] 서적 香村
[41] 서적 香村
[42] 서적 香村
[43] 서적 ⾹村
[44] 서적 金水
[45] 간행물 役割語の不思議な世界 http://www.let.osaka[...] 2008-05-04
[46] 서적 大阪ことば事典 講談社
[47] 뉴스 名物編集者の「一人語り劇場」と大阪愛 http://www.ktv.co.jp[...] 関西テレビ 2010-12-22
[48] 서적 金水
[49] 서적 金水
[50] 서적
[51] 문서
[52] 서적 金水
[53] 간행물
[54] 서적 金水
[55] 서적 金水
[56] 서적 大阪の挑戦 快適ナンバー1都市をめざして 日本経済新聞社
[57] 뉴스 【新聞に喝!】関西大学副学長・黒田勇 http://sankei.jp.msn[...] MSN産経ニュース 2009-10-31
[58] 뉴스 大阪の今を知るとっておきの3冊 現在と過去が二重写しに https://archive.is/2[...] 毎日jp
[59] 서적 楳垣編
[60] 논문 大阪方言談話資料の分析:文法とアクセント https://repo.lib.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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